내가 처음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입문할때의 일이다.


대학 다닐때 배운 FORTRAN, COBOL, Turbo C, Borland C를 조금씩 한게 전부인 내게 MFC1.5는 너무 생소했다.
내가 해본것은 MS-DOS프로그램이 전부였는데 Windows3.1용 프로그램을 개발하는거였다.
한국CNA라는 회사였다.
모두들 파견을 나가고 회사에는 사장님과 경리와 나 이렇게 셋만 있었다.

 

처음 사장님에 내게 내린 미션은 Graphic Editor을 개발하라는 거였다.
선, 사각형, 삼각형, 원, 타원 그리고 자유곡선을 그리는 툴을 개발하라는 거였다.
그리고 내가 각 객체들의 형태를 기억하고 자유롭게 이동시킬수 있도록 하라는 거였다.
정말 막막했던 것 같다.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고 책에는 선, 사각형, 삼각형, 원 정도는 나와있었다.
자유곡선을 그리는 것까지는 어떻게든 했는데
각 객체들의 형태를 기억하고 이동시키는게 문제였다.
선, 사각형, 삼각형, 원은 두점만 기억하고 있으면 이동 후 다시 그릴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자유곡선이었다.
두점이 아니라 변화되는 모든 점들을 다 기억하고 있어야 했다.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사장님이 준 시간은 15일...그러나 다른것은 다 했든데 자유곡선은 처리를 못했다.
그날부터 오전에는 야단을 맞고 언제까지 다 할 수 있냐고 혼나고
이제 그만 프로그래머 욕먹이지 말고 그만두라는 소리를 하루에 4시간 이상씩 들었다.
정말 그만 두고 싶은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심지어 누구하나(나 빼고 사무실에는 두명밖에 없었지만) 출근했는지 퇴근했는지 관심도 안줬다.
밥을 같이 먹자는 이야기도 안하고 당신들끼리만 먹고 왔다.
마치 빨리 프로그래머 그만두라고 하는 것처럼...

 

그러다가 증권전산에 계시는 선배(정확히는 나이 동갑인 여자 과장님, 나이 어린 사수님)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랬더니 미적분을 사용하면 될거라고 했다.
그게 전부였다.
결구 다른 분에게 다시 물었다
MSDN을 참고하란다.
그게 전부였다.

 

그 말이 오히려 포기가 아닌 오기를 만들었다.


결국 서울서 부산을 오가는 밤기차를 이용해서 개발잘한다는 분에게 배우고 또 배웠다.
월급도 잘 안나오는 회사였는데 누나에게 오히려 용돈을 받아가며 배워서 결국은 만들었다.
다 만드는데 아마 1달은 더 걸린것 같다.
그런 다음 사장님에게 보여줬더니 하신 말씀이....
"그래"
그게 끝이었다.

 

증권전산에 계시는 선배는 그제서야 자기들이 만든 소스 하나를 던져준다.
너무 간단했다.

 

"이런 젠장"

 

이때부터 난 프로그램머의 길로 들어섰다.


그러던 어느날 파견나가 있던 선배들이 모두 들어왔다.
회의 겸 잡담시간이었던 것 같다.

여자 과장님이 내게 묻는다...


"노을씨(편의상 이름대신 썼다...이해를) MFC1.5에 대해서 이제 좀 알겠어요?"

내 대답은
"네 이제 좀 알것 같습니다"
였다.

 

그런데....
내 바로 직속 사수(그때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었다. 그리고 회사에서 천재라고 할 정도로 개발에 귀재였다)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다
대답이 너무 기가 막혔다.
"100미터 전방에 MFC출발선이 있는것 같은데 아직 출발선이 안보입니다"

이런...뭐야...

 

그런데 그보다 더 경력이 오래된 분에게 묻는데 대답이 더 가관이다
"뿌연 안개속에 MFC가 있는것 같은데 아직 잘 안보입니다"

 

젠장...내가 가장 똑똑한거잖아...

 

그날 이후로 난 심각해졌다.
그리고 열심히 MFC와 씨름을 했다.
사수가 정해지고 사수를 따라 파견나가서 증권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알았다.
정말 난 멍청했다고...바보였다고...
너무 모른다고....내가 프로그래머가 아니라고....

 

어떤 선배는 자기가 개발한 것을 파는데 남이 개발한것을 공짜로 쓰면 안되다고 개발툴, OS를 전부 자기 월급으로 사는 사람도 있었다.

전부 프로들이었다.

 

난 개발자도 아니었다...초보 프로그래머라고 하기에도 챙피했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배워가면서

처음 어슬프게 오기니...자만이니 했던것을 다 내려놓았다...

 

그게 나를 프로그래머가 되게 한 첫 사건이었던 것 같다...

top